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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anuary 10, 2012

the history of Korean Sake 술주 in Masan 馬山 2


마산 청주 주조장의 마지막 모습: 장군동 주조장의 정체 ?
2009/11/26 07:30 in 감춰진 도시이야기


삼광청주 공장전경 (출처 : 마산시청 포토자료실/역사)

- [유장근 교수의 도시탐방대]가 1차 탐방시 장군동 양조장의 실체를 몰라서 답답해 하다가, 유대장님이 저에게 조사를 한번 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듣고 그냥 지나쳤었다.
그후 마산 역사사진을 정리하다가 혹시나 해서,
대조해보니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굴뚝과 건물의 지붕선을 보면 정확히 동일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간 '빙고',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위 사진에서 모서리 가로수를 지우면 정확히 같은 각도에서 본 사진이 된다. )


유장근대장 촬영 (09.10.24)




- 이건물은 1925년에 청주양조면허를 얻어 마산부 통정(장군동)에서 창립한 千島園 주조장으로, 창업주는 遠勝豊吉, 명주 彌生의 생산량은 연간 500석 내외였다고 한다.
(마산상공회의소 100년사)

- 천도원 주조장은 옛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다가 삼광청주로 바뀌었으며, 해방이후 적산 청주공장들은 연고자들에게 불하하였는데, 손삼권씨가 인수하여 운영하였었다.
삼광 청주는1962년 기존 업체들이 문을 닫아 삼광과 백광 2개 양조장만이 마산에서 청주을 생산하였던 양조장이다.


삼광청주 상호 (사진출처 : 마산문화원 전시사진)


- 1971년도에 청주 제조업체는 백광, 신광, 삼광 등을 비롯한 5개의 양조장이 향토 명산의 청주를 제조하였으나, 1973년 정부의 군소 주조업체의 통합조치 이후 삼광주조장은 문을 닫게 되었다.
당시 백광 양조장 하나만 생산을 계속 하다가 이마저 생산을 중단하고 문을 닫게 되어 酒都馬山의 명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1999년 경남신문에 인터뷰한 손삼권씨는 45년 10월 지시마엔 양조장을 당시 일본인 사장이던 엔도(遠藤豊吉)로부터 인수, 합포구 장군동 3-13번지 공장에서 삼강(三江)양조장을 운영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일본공장 이름을 그대로 쓰고 술 이름도 「무궁화」로 정했으나 「나라 꽃을 마시면 되느냐」는 주변의 지적에 따라 공장은 「三江」(대동강 한강 압록강), 술 이름은 「三光」(해 달 별)으로 바꿨다. 45년 11월부터 청주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광복이후 한국사람으로서는 가장 먼저 청주를 만들었다 한다.



- 근대문화유산 목록화사업 (경상남도. 2004)자료에 의하면,
이 건물은 1945년에 건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공장은 블록조 단층건물로 중앙에 벽돌조 굴뚝이 높이 솟아있다.
주변의 주택은 2층 목구조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중정으로 열린 마당과 그 둘레에 2층의 주택들이 있다. 고 기록되어 있다.
경남신문 인터뷰 시기인 1999년 에서 경남의 근대문화유산리스트 정리시기인 2004년 사이에 유명을 달리한 것 같다. 그래서 목록화리스트에서 건물의 소유는 작고한 손삼권씨 앞으로 되어있었다.
건물이 지어진 시기는 손삼권씨가 해방이후 적산가옥을 인수한 것을 감안할 경우,
1925년 천도원주조장 설립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현재 이건물은 개축되어 다가구 형태의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있으나, 그나마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이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경남의 근대문화유산 자료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것을,
이번 도시탐방대를 통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건물은 없어지더라고 기록은 남겨져야 된다.
물론 이 건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한 개인의 기억에 남아있기도 하고
어느 신문 한켠에 남아있을 뿐이다.

지역사에서 이러한 양조 변천사와 근대 건축물에 대한 자료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소홀히 취급하기 쉬운 미시사 부분의 정리를 통해,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문화시설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이 문화도시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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